염승숙(이하 염) 『술과 바닐라』는 『나를 위해 웃다』 『애니』 이후 세번째 소설집이고, 장편소설 『친밀한 이방인』 이후에 내놓는 여섯번째 책이에요. 발표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읽고 응원하는 독자이자 동료로서 저는 괜히 뭉클한 마음이 듭니다. 이 일곱 편의 소설을 써낸 그간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실까요. 거의 육 년 만의 새 소설집이죠?
정한아(이하 정) 생각해보니 이번에 묶이는 소설들이 삼십대 중후반에 쓴 거예요. 작가로서 고민이 제일 많았던 때. 그전에도 물론 힘들었지만 좀 다른 의미에서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,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진심으로 거듭하던 때.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데.
염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두번째 소설집 『애니』도 다시 봤는데, 정말 느낌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. 지금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더 확실히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.
정 좀 발랄했죠, 그전에는?
염 아유, 그럼요. 말이라고. (일동 웃음)
정 『애니』 전에는 더 발랄했고요.
염 첫 소설집은 『나를 위해 웃다』였어요.
정 날아가요, 날아가. 너무 발랄해서.
염 『나를 위해 웃다』라니. 아니 지금 어떻게 웃어요, 우리가. 뭐 나도 똑같죠. 첫 소설집이 『채플린, 채플린』이었는데 지금 그런 거 쓰면 잡혀가요. (웃음) 그러고 보니 세 권의 소설집의 역사에서 작가 정한아의 여러 가지가 보이고 또 스쳐가네요. 시기별로 각기 다른 고민과 지향점이 느껴졌어요.
정 내 생활의 분투의 지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.
염 맞아요, 내가 너무 감정이입해서. (웃음) 그래도 『애니』에서 『술과 바닐라』에 이르기까지 변모해온 지점들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.
정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‘엄마 되기’의 과정을 겪은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. 전생과 후생이라고 나누어도 될 정도로 삶의 결을 너무 다르게 만들어놓은 사건이고, 무조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니까요.
염 천지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. 내가 딛고 선 땅의 균열을 느낄 정도의.
정 알고 있겠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서 작업을 밤에 하지 않잖아요. 내 시간이 내 것이었던 시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.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아이를 재우고 밤에라도 뭘 해야 하는데, 난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. 거기서 오는 큰 균열이 있었던 것 같아요. 시간을 통으로 못 쓰고 한 시간 두 시간 조각으로 나눠서 써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도 컸고요.
염 공감해요. 아이를 곁에 둔 채로 소설을 쓴다는 게 정말 불가능하게 여겨져요. 사고가 연달아서 이어지질 않고, 신경은 자꾸만 잘게 분쇄되고.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한다는 초조함에 시달리잖아요.